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우리는 젖어 있었다.
비를 막는 대신 바람에게 너그러웠던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겨울비였다.
추위는 잠시 쉬라는 듯 대지를 적셨고
겨울의 하얌은 안개로 변해 있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고요하게 반짝이던 것은 그녀의 눈동자였다.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힘들지 않아요, 아니 무척 즐거운 걸요"
엉덩이 한쪽을 겨우 걸칠 수 있는 의자에 몸을 얹고
가방에 들어 있던 식량을 꺼냈다.
김밥 두 줄과 육개장 사발면.
보온병에 담아왔던 온기를 사발면에 가둬 놓고
그녀와 나는 김밥을 입에 넣고 즐거워 했다.
정자의 바람은 젖은 옷을 괴롭혀 몸을 움추리게 했다.
우리를 구원할 것은 사발면 뿐이었다.
조심스레 벗겨낸 뚜겅 사이로 요염한 면빨과 정열적인 국물이 보였다.
사양하는 그녀의 손에 떠 밀려온 사발면의 면을 집어 입에 넣고 국물을 입안 가득 담았다.
아.. 하아...
어린 날의 추억이 혀 끝에서 되살아 났다.
아웁... 후루룩...
그 감각, 이제는 기억에 묻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행복.
나는 그녀 앞에서 또 그렇게 가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비어버린 사발면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나와 같았는지 부끄러움이 입술에 묻어 있었다.
육개장 사발면.
언젠가 아름다운 순간에 또 다시 함께 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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